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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롤러코스터 인생 살아 온 방송인 권영찬 고난 3종 세트 만나 자살
등록일 : 2014-08-30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 : 2629


‘롤러코스터.’ 권영찬 권영찬닷컴 대표의 삶을 보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잘나가는 개그맨과 사업가로 연 수익 5억원이 넘는 화려한 삶을 살다가, 누명을 쓰고 실형을 받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입증돼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나 했더니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뻔했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현재 행복 및 재테크 강사로 수많은 기업 등에서 강연하고, 방송활동은 물론 지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사업으로 전성기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당신이 기적의 주인공입니다’라는 자서전을 내놨다. 책을 쓰면서 그는 지난 시간이 떠올라 몇 번이나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권 대표는 솔직하게 지난날들을 얘기해줬다. 캐나다에서 온 꽃뱀에 제대로 물려 2005년 6월, 권 대표는 모든 분야에서 거침이 없었다. 정치인, 사업가, PD, 기자 등과 함께 사적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났다. 경기 오산에 대형 PC방을 차린 뒤 전국으로 가맹점을 확대하면서 곳곳을 누볐다. 권 대표는 “너무 잘나갔다. 돈 찍어내는 기계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의 표현대로 ‘악마의 손짓’은 여기서 시작됐다. PC방 순회를 하던 중 서울 S여대 지점에서 아르바이트생 Y를 만났다. Y는 유력 사업가 부친을 둔 캐나다 대학 휴학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Y는 권 대표의 모임에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여의도 한 주점에서 늦게 모임을 마친 어느 날, 권 대표는 Y와 둘이 남게 됐다. Y는 노골적으로 권 대표에게 다가왔다. 망설임 끝에 장소를 옮겨 Y와 밤을 지냈다. 그러나 술이 과했던 탓에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 열흘 뒤, PC방 사업에 관심이 있다며 누구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형사였다. ‘사업이 또 확장되는구나’ 콧노래를 부르며 나간 권 대표에게 돌아온 말은 “Y양이 당신을 강간(치상)으로 고소했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임의동행 형식으로 용산경찰서로 가 조사를 받았다. 지옥으로 떨어지다 세시간 동안 여섯 번 강간을 당했다는 Y의 주장은 여과 없이 매스컴을 탔다. 권 대표는 당시 수사기록을 빠짐없이 보관해놨다. Y가 자필로 쓴 법정 진술도 보여줬다. ‘상처가 너무 아파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반드시 처벌해 달라’ 등 개발새발로 쓰인 글씨가 선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대질심문을 할 때 담당 형사는 Y의 편을 들었다. “연예인을 사건으로 엮으면 인센티브가 있었던 것 같아요. Y의 몸 진단 과정에서 제 DNA가 나왔다고 형사가 유도신문도 했어요. 물론 거짓이었습니다. 둘(형사와 고소인)이 짜 놓은 시나리오에 제대로 걸린 겁니다. 진단서도 없는데 구속된,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부당한 사건으로 법학 전공생들이 공부한다고 하네요.” 수인번호 ‘2042’로 구치소에 들어간 그는 죽자는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견뎌냈다. 그의 결백함을 믿고 묵묵히 곁을 지킨 여자친구(현재 아내)의 힘이 컸다. 권 대표는 도처의 합의 압박을 한사코 거부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37일 만에 어렵게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1심에서 2년6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 과정에서 “정말 이러면 안 되잖아”라고 피를 토하며 절규해도 그의 편은 법정에 거의 없었다. 끝나지 않은 불행 2심 재판 과정에서는 진실이 밝혀졌다. 사건 후 며칠간 누워 있었다던 Y가 서울을 누비며 쇼핑한 사실 등 꽃뱀의 파렴치함이 속속 드러났다. Y는 나이도 이름도 달랐다. 부모는 캐나다로 투자이민을 갔다 망한 뒤 이혼했고, 대학 휴학생이 아니라 고교 중퇴생이었다. 2006년 6월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났다. 권 대표는 열흘 뒤 Y를 위증, 무고 등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Y는 이미 2심 재판 다음날 주소와 휴대폰을 정리한 뒤 권 대표가 걸어둔 보석 공탁금 3000만원을 챙겨 캐나다로 도망간 상태였다. 2006년 11월24일, 대법원 무죄 선고가 났다. 상처가 채 아물기 전 또 다른 불행이 터졌다. 권 대표는 예전부터 주식 투자를 해왔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을 투자로 구해보려는 생각이었을까.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돼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8억원 등 본인 돈 11억원에 지인들에게 빌린 돈 19억원을 M&A 관련 기업 주식에 ‘몰빵’했다. 이 기업이 상장폐지되면서 30억원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자꾸만 베란다로 유령처럼 향하던 그를 울며불며 부여잡은 건 어머니였다. 불행은 아직 남아 있었다. 2007년 12월, 전북 정읍의 한 촬영지 세트장에서 녹화를 하던 중 갑자기 세트장이 무너졌다. 한 다리를 들고 제스처를 취하던 중 중심을 잃고 그대로 추락했다. 3, 4번 척추가 부러지고 왼쪽 발뒤꿈치 뼈가 27조각이 났다. 6개월 동안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구치소-파산-사고로 이어진, 그의 표현대로 ‘고난 3종 세트’의 완성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행복전도사, 재테크강사 등으로 현재 활동 중인 권 대표는 지난 3~6월 ‘삼성전자 대표강사’로 직원교육을 했다. 강의 주제는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결국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단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인생 살고 싶었겠습니까? 하지만 죽지 않고 버티다 보니 결국 길이 생겼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병상에서 회복한 뒤 지인의 부탁으로 무료로 봉사하다시피 시작한 웨딩사업은 그의 노력으로 빠르게 궤도에 올라섰다. 과거를 애써 잊으려 미친 듯이 일했다. 마케팅 귀재로 귀환한 그에 대한 소문이 서서히 퍼졌다. 여세를 몰아 2009~2010년 박지성 선수의 국내 CF 총괄마케팅이사직을 관련 법무법인으로부터 따냈고, 이어 대종상 마케팅총괄이사도 지냈다. 꽃뱀에 물리기 전 홈쇼핑 광고를 진행하며 ‘히트상품 제조기’로 불렸던 경험이 되살아났다. 인생의 풍파를 모두 겪은 노련함이 더해져. 나누는 삶을 살자 웨딩컨설팅사 알엔디클럽 공동대표 등 그의 직함은 한두 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연세대 송도 글로벌신학교육원(GIT) 등 각계 후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치킨 등 광고수입은 받지 않고 소년원 등 후원 계약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는 “‘계약대로 후원 안 하면 소송 겁니다. 소송 잘하는 거 알죠?’라고 관계자에게 말했다”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끓는 열정과 순수함이 느껴졌다. “삶의 에너지가 과해 불행이 찾아온 것 같은데, 모든 불행을 이겨낸 결국 복 있는 사람 아니냐. 불행으로 끝나는 사람도 많다”고 물었다. “맞아요. 제가 호기심 천국입니다. 사람 만나는 것 너무 좋아하고. 삼류 드라마도 못 될 제 인생 자체가 바로 기적입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을 이겨내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본인이에요. 제 삶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딨습니까.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보고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쓸데없는 데 돈 쓸 거 조금만 줄이면 죽어가는 아픈 이웃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화려함 뒤의 그림자 경쟁 치열한 연예계…80%는 살아남기도 어려워
개그맨 A씨는 어젯밤 담당 PD, 작가와 술자리를 가졌다. 개편시즌이 다가오는 차에 평소 못한 감사 표시 겸 마련한 자리다. ‘3차’까지 끝내고 집에 오니 새벽 4시다. 일찍 서울 모처에서 학습박람회 MC를 봐야 해 잘 시간이 별로 없다. 행사가 끝난 오전 10시, 화장실로 달려가 불편한 속을 달랬다. 낮 12시부터는 모 채널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이다. 프로그램 녹화는 오후 6시에 끝났다. 8시 광고대행사 관계자들과의 만남까지 두 시간이 비었다. 몸이 오직 재산, 관리를 위해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사우나에서 30분 동안 눈을 붙였다. 개그맨이 ‘잘나갈 때’ 를 가정해 본 하루다. 개그맨 배우 등을 막론하고 방송은 치열하다. 출연 프로그램은 제한돼 있는데 매년 출연자는 쏟아지기 때문이다. 소위 ‘아이돌’이 대형 기획사의 지원을 업고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요즘은 더 그렇다.
권영찬 대표는 “연예인 상위 1%가 독주하고, 20%가 브라운관에서 활동한다면 나머지 80%가량은 연명하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하지만 동료 간에 캐릭터가 겹치면 생존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따라서 잘나가는 연예인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 봄, 가을 두 차례 개편 시즌이 오면 방송인들은 상당히 민감해진다. 개편 후 일이 계속될 수도 있고, 갑자기 잘려 ‘실업자’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같이 입사해도 10여년 뒤 누구는 1년에 몇 억원을 버는 인기 연예인이 되는가 하면, 누구는 한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못해 모자를 눌러 쓰고 대리운전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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